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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수 재산 박지성 심판 나이 키 연봉 부인 집 인천 와이프 근황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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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수 재산 박지성 심판 나이 키 연봉 부인 집 인천 와이프 근황 아내

 

이천수 나이

이름

이천수

李天秀 / Lee Chun-Soo

 

출생

1981년 7월 9일 (39세)

경기도 김포군 계양면

 

국적

대한민국 국기 대한민국

 

본관

인천 이씨

 

신체

172.4cm, 87kg, A형

 

직업

축구선수(공격수 / 은퇴)

축구행정가

 

소속

선수

울산 현대 호랑이 (2002~2003)

레알 소시에다드 (2003~2005)

→ CD 누만시아 (2004~2005 / 임대)

울산 현대 호랑이 (2005~2007)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2007~2009)

→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8 / 임대)

→ 전남 드래곤즈 (2009 / 임대)

알 나스르 FC (2009~2010)

오미야 아르디자 (2010~2011)

인천 유나이티드 (2013~2015)

프런트

인천 유나이티드 (2018~2020 / 전력강화실장)

 

국가대표

14경기 20골 (대한민국 U-20/1999~2000)

27경기 11골 (대한민국 U-23/1999~2006)

78경기 10골 (대한민국/2000~2008)

 

 

그의 업적

 

청소년 대표 시절 최태욱과 함께 투톱으로 뛰며 당시 한국 축구계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작은 체구에 뛰어난 스피드를 가졌으며 특히 공 잡고 방향전환하면서 순간적으로 가속을 붙이는 능력이 좋았다. 거기에 발재간, 정교한 크로스와 킥 능력 등으로 국가대표 경기에서 많은 활약을 펼쳤다.

 

공격 포지션은 대부분 소화했지만, 가장 파괴적이던 위치는 쳐진 스트라이커. 이후 국가대표에서는 작은 키로 인해 최전방 공격수보다는 주로 측면 공격수로 뛰게된다. 고종수, 나카무라 슌스케와 더불어 아시아 최고 데드볼 스페셜리스트라 할만큼 정지된 상태에서 킥 능력은 세계적이었으나, 러닝 크로스의 성공률은 생각보다 평범하다.[13] 또한 국가대표 무대에서 시원하게 돌파하는 모습이 별로 안 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천수가 한때 박지성과 비교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이천수의 스피드나 가속력, 방향전환 능력이 국가대표 수비수들을 상대로 상당한 우위를 가져가지 못했던 것은 맞다. 하지만 분명 상당한 위협을 가할 정도는 됐다. 그런데 이천수 역시 박지성처럼 투쟁심이 엄청나서 활동량이 비록 박지성만큼은 아니라 하더라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활동량도 좋은데 공 없을 때 움직임까지 좋고, 성격 때문인지 좋을 때는 정말 과감하고 저돌적이라서 침투능력이 굉장히 위협적이었다. 알다시피 킥력도 상당했다. 박지성과 이천수가 동시에 가동되는 경우 둘 다 공 없을 때 움직임과 침투능력, 활동량과 투쟁심이 강하기 때문에 상대 입장에서 대처하기 난처하고 휘둘릴 가능성이 높았다.

 

이천수 업적 2

 

동갑내기 축구 선수이자 비슷한 시기에 스타로 떠오른 박지성과 비교되며 '게으른 천재'라는 인식이 퍼져있다. 노력하는 수재 박지성과 노력하지 않는 천재 이천수. 이러한 비교가 흥하게 된건 두 선수의 축구 인생이 상당한 대비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천수는 대학 축구 최고 명문인 고려대학교에 입학하고, 히딩크와 박지성조차도 박지성보다 이천수가 뛰어나다고 말한 사실 때문에 천재 이미지가 강했고 박지성은 어렸을때부터 축구 선수로선 치명적인 평발에다 받아주는 대학도 없었고 천재로 유명했던 이천수와 달리 거의 무명 선수로서 안습한 시절을 보낸뒤 월드컵을 통해 스타가 되며 '노력끝에 성공한 수재' 이미지가 있었던 것.

 

거기다 두 사람 다 비슷한 시기에 해외 진출을 했는데, 이천수가 적응 실패 이후 귀국하여 여러가지 스캔들에 휘말리며 일이 꼬인데 비해 박지성은 승승장구하고 성공하여 맨유로 간 이후에도 거의 도닦는 승려[23] 수준의 멘탈을 보였으니 두 선수는 비교될수 밖에 없었다. 스타에서 출발하여 여러가지 스캔들등으로 재능을 다 꽃피우지 못한 선수와 무명 듣보에서 출발하여 현세대 최고의 아시아 선수로 국민적 스타가 된 선수의 대비이니 축구 인생 자체로만 놓고보면 딱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게으른 천재 vs 성실한 수재의 전형이었던 것. 또한 박지성과 대비되는 잦은 방송 출연과 연예계 활동으로 인한 이런 저런 스캔들 때문에 안 좋은 의미의 풍운아로 유명해졌다.

 

하지만, 이천수도 충분히 노력하는 선수였다. 당시 부평고에는 한명의 천재와 한명의 노력가가 있었다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로는 천재는 이천수, 노력가는 최태욱이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최태욱이 천재였고 이천수가 노력가였다고, 부평고 시절 고교 축구계를 씹어먹던 동갑내기 최태욱에게 실력의 벽을 느끼고, 최태욱을 이기기 위해 미친듯이 연습했다고 한다.비교대상인 박지성 역시 전국에서 가장 축구 잘하는 초등학생 6명에게 주는 차범근 축구상을 받았을 정도로 재능이 좋았던 선수였다. 다만 중고교 시절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고 평발 + 무명 시절로 인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노력가로 보였을 뿐이다. 물론 노력가는 맞지만 노력 이상의 재능이 있는 선수였다는 것.